8년전 인도 서부지역은 한 마을에서 현지인 사역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열정도, 비전도, 사역도 열심이고 뜨거운 사역자였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의 교회를 3000명이 넘는 대형교회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꿈만 꾸지않고 그것을 이루기위해 정말 열심히 사역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의 마을 전체 인구를 다 합쳐도 3천명이 안됩니다. 그 문제는 버스를 동원하여 다른 마을의 성도들을 싣고 오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을이 너무 작아 큰 건물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에게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마을 입구의 넓은 공터를 마음에 찍어놓고 그곳에 3층짜리 대형 교회당을 세우겠다는 계획까지세워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를 만났다면 흥분해서 격려를 해주고 대형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요즘 그렇게 열심인 현지인 사역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부터 방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3천명 교회가 아니라 30명 교회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중에서 열심인 자들을 골라 훈련하고 이웃 마을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이 농담인줄 알았나 봅니다. 그러나 만날때마다 설득하고 재촉하고 거의 협박하다보니 그는 하는 수없이 7명의 성도를 이웃 마을로 보냈습니다. 그중에는 처남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고 먼 친척도 있었습니다. 가서 해보다가 안되면 다시 돌아오라는 말을 했지만 내심 잠시 시늉만 하고 돌아 오라는 주문이 더 강했습니다.
성도들이 이웃 마을로 가기전에 간단한 훈련을 했습니다. 어떻게 전도하고 성경을 어떻게 가르치며 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등… 그러면서 강조했습니다. 새로운 마을에 가서 전도하여 두가정을 얻게 되면 한가정은 마을에 남기고 한가정은 또 이웃 마을로 파송하라고요. 극단적이었습니다. 많이 모이는 교회를 꿈꾸는 마음조차 갖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파송된 7개 마을에서 마을 기도 처소가 생기고 가정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웃 마을로 한두명을 다시 보내는 일이 생겼습니다. 새로 들어가서 개척한 마을에 성도들이 생기면 그곳에서 또 이웃 마을로 보냈습니다.
그즈음 미국에서 한인교회 성도들이 단기선교를 왔습니다. 그분들에게 했던 유일한 사역 지침은 새로운 마을들을 다니며 가정을 방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방문하면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고 한마을이라도 더, 한가정이라도 더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주간의 단기선교 기간동안 교회 팀들은 많게는 1000 가정, 적어도 300~400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현지인 사역자들이 가보지도 못했던 마을까지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접촉점이 만들어 졌습니다.
단기선교팀이 떠나고 나면 현지인 사역자들은 그분들이 다녔던 마을을 방문하면서 후속사역을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수십개 마을에 접촉점이 생기고 전도할 기회들이 생깁니다. 그 다음해 단기선교팀이 다시 찾아오면 좀더 반경을 넓혀서 마을들을 방문합니다. 사역자들은 그 마을들을 다시 찾아 다니며 후속 사역을 합니다.
이렇게 사역의 반경이 넓어지니까 현지인 사역자들의 문제는 일꾼이었습니. 한두명이 그 넓은 지역을 다 할수도 없게 됩니다. 결국 자기가 개척한 작은 마을 교회의 성도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성도들을 훈련하고 준비시켜 새로 개척된 마을들을 담당하게 합니다.
이렇게 8년여를 했습니다. 3천명 모이는 교회를 꿈꾸던 사역자는 이제 그 꿈을 깨끗이 버렸습니다. 대신 그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마을마다 교회를 개척하고 그 사역 반경을 서부 지역 전체로 넓히는것입니다. 각 마을 교회에는 적게는 10명, 많아야 60명 모이는 가정 교회에 불과하지만 그 교회들이 수천개가 개척되었으니 수십만며이 모이는 교회가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몇년전 그 사역자와 일주일동안 마을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마을 교회들은 소수의 인원이 모였고, 예배당도 없어서 지도자 가정의 마당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불과 10명 남짓한데 벌써 서너명의 리더들이 세워졌고 그분들이 멀리 떨어진 새로운 마을을 개척하여 가정 교회를 또 세우고 있었습니다.
왜 확산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느냐고요? 인도의 선교는 정말 오래됐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중 하나였던 도마가 벌써 이곳에 왔었고 근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위리엄 케리가 인도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인도는 선교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라성같은 선교사들의 사역지 였습니다. 또 엄청난 자원이 투자되는 선교지입니다. 그런데 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전도종족을 가진 나라가 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항상 하며 다녔습니다.
여러가지 원인들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대형교회 중심의 선교였습니다. 사역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가시적인 부흥의 증거들이 있어서 격려가 될지 모르지만 세월이 흐르고 지도자가 없어지고 자원에 계속 충당되지 않으면 대형교회는 건물만 남든지 그마저도 폐허가 된 모습을 수도없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인도 어느곳을 가든 폐허가 된 역사적인 선교의 현장을 어렵지않게 보게 됩니다.
스스로가 자립하도록 돕지 못한 것입니다. 자립하려면 영적으로 스스로 가르치고 훈련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자립하게 도와야 합니다. 인도의 경제적인 수준이 급격하게 성장하지 않는한 현재의 기독교 교회는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 교회의 규모를 작게 하면 됩니다. 가정교회 수준으로 만들면 됩니다. 힌두 사찰이나 이슬람 모스크는 마을에서 자립이 되는데 교회만 그렇지 못한 이유는 대형교회가 항상 좋다는 잘못된 의식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에 5천개가 넘는 교회들이 마을마다 개척되어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현지인 사역자는 센터교회 역할을 하며 중간 지도자와 사역자를 훈련하고 감독합니다. 그 중간 지도자들은 각 마을의 교회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감독하여 이웃마을로 보냅니다. 그곳에 또 교회가 개척되면 또 보냅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금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선교적 모델을 지금 개척해야 할 선교지에 적용해야 합니다. 현지인 사역자도 지금은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공공연하게 고백합니다. 내속에 있는 확산과 재생산의 비전이 이제는 자기의 가슴속에 그대로 복사되어 자기의 인생을 인도하고 있다고요. 그는 이 모델을 이웃 국가인 네팔에도 심으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